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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곳에 꽃대가 올라왔다. 이맘때쯤 올라왔을 그 꽃을 아랫마을에서 진작 보았다. 하지만 이곳에선 감감무소식이다. 누군가에게 올라올 때가 되었는데 하며 중얼거렸다. 계절이 바뀌어도 느끼지 못하는 시기다. 담장 위에선 능소화가 무심하게 피었다 떨어지길 반복하고 있다. 마지막 한 송이 피어있는 범부채가 지면 가을이 오려나 푸른 하늘이 느껴진다.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었으면 했다.
상사화는 매번 그렇게 기다림을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수줍게 한 송이가 피었다. 그리고 꽃대가 열을 맞춰 올라오고 있다.
상사화를 처음 보았던 때는 초등학교 시절 외할머니댁 샘터에서 보았다. 잎은 보이지 않고 꽃대만 올라와 분홍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샘을 보면 상사화와 두레박 깊숙이 떫은 감을 담가 우려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과일이 익지 않는 절기에 그만한 간식이 없었다.
마당에 피고있는 상사화도 내가 처음 보았던 그곳에서 한뿌리 옮겨와 심었던 꽃이다. 40년 전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