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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불일암

by 허허도사 202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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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 산사를 찾아 송광사로 향했다. 비 오는 날 산사의 분위기는 윤슬처럼 빛나는 산허리를 감싸는 흰 구름이 아닐까?
매표소 창구에는 무료입장이라 붙어놓았다. 무소유길을 따라 오른다. 계곡물은 우렁차게 흐르고 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계류도 폭포처럼 떨어진다. 습한 기운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흥건하다. 성급하게 차도로 진입하였다. 조금 더 지나 오솔길로 들어서야 숲속 기운을 받아 세속의 묵은 때를 내려놓았겠지만 이미 늦었다. 급하게 올라가는 길을 따라 오르는 우리 말고도 조용한 산사를 찾는 이가 있다. 우중에 우산을 쓰고 조용히 걷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 살며시 미소를 짓고 올라간다. 무소유길을 들어서려고 개울을 지나자 길은 안전 띠가 걸쳐있다. 호우 피해로 길이 폐쇄되었나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소형 덤프에 돌을 싣고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을 무지몽매한 이들의 소행으로 파헤쳐지고 있었다. 통나무로 이어진 계단에 삼나무와 대나무가 경계르 이루고 있을 그 사색을 공간을 굴삭기가 걷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힘겹게 올라왔던 돌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자연에서 인공의 미로 변해버린 길이다. 무소유라는 길이 무색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 찻길을 따라 불일암으로 들어간다. 요사채가 있어야 할 자리가 횡 하다. 이곳이 그 아름다운 불일암인가 한다. 대숲을 병풍 삼고 있는 불일암이 아니다. 대숲은 뻥 뚫려 적막은 사라지고 세속과 연결되는 기분이다. 더 이상 조용한 산사가 아니다. 대숲에 불어 드는 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겠다. 그리고 요사채는 무너지고 새롭게 증축되고 있었다. 불일암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변했다. 돌담은 낮아지고 당분간은 찾지 않게 되었다. 불일암에 올라 스님께 합장하며 서둘러 내려왔다. 다행히 시누대가 우거진 입구는 그대로다. 그 길을 따라 감로암으로 향했다.
검로암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솔길 그 자체다. 통나무로 이어지는 다리를 지나면 자연과 동화되는 숲길이다. 싸목싸목 걷게되는 길로 무상의 길이다. 가슴 높이로 이어지는 길로 작은 고개를 넘으면 조개산 자락의 넓은 품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아래 송광사가 자리하고 그 위로 감로암이 자리하고 있다. 감로암에서 바라보니 산허리로 흰 구름이 피어오른다.
무량수전을 바라보고 내려왔다.
그 아름답던 율원도 이제는 사라진 나무들로 그저 허허롭다.
송광사가 유네스코 산사로 등재되지 못함이 끝이 없이 이어지는 삽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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