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6.
설날은 이제 의미가 없는 듯 그저 연휴로 만 느껴진다. 그 연휴기간이 짧거나 길거나 이제는 짧은 것이 좋다고 느껴진다. 북적이는 것도 싫고 내 집이 편하다. 그래서 설 다음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고속도로를 타다 여유를 갖고자 창평으로 빠져나와 국도를 타고 내려온다. 평소와 다르게 차량이 정체는 없어 다행이다. 겨울 날씨 답지 않은 포근한 날이 걱정되기도 한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고 하지만 잔설이 남아 있어야할 들판은 불소시게처럼 바짝 말라있다. 생기가 있어야할 마을은 사람조차 보이지 않아 답답하였다.
창평을 지나 옥과를 넘어가는 경계에 민속품경매장이 있다. 어제 보았던 차량들이 오늘도 줄서있다. 월하정인 명절 당일에 경매를 할까 했지만 하였나보다. 토요일 경매로만 생각하였는데 오늘도 차량이 많이 보인다. 혹시나 구경삼아 들러보았는데 오늘은 수석경매를 하여 밖에 조그만 항아리를 만원에 구매하였다.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날씨다. 내일은 비가 온다는 소식에 화천이 생각이났다. 처남은 오래전 무주에서 송어를 잡았던 기억에 어름 낚시를 해보고 싶어 몇 해 전부터 계획을 잡았지만 겨울답지 않은 날씨로 몇 차례 연기를 12일에 숙소까지 예약을 하였다. 하지만 폭우로 인해 얼음이 녹아 연기되자 계약금까지 포기하고 말았다. 연기에 연기를 이번 주 개막을 한다고 한다. 다음달초에 예약을 하였는데 이번비가 스쳐지나가길 바랜다.
이틀간 움직이지도 않고 기름진 음식에 술과 함께하여 조금이라도 움직여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비 소식만 아니면 집으로 곧장 향했을 것이다. 인근에 걸을만한 곳을 생각하니 태안사가 떠오른다. 가본지도 오래되어 잠시 걸어보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 조태일 기념관에 주차를 하니 태안사 숲길 안내판이 보인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로 1.54km 30분정도 소요된다.
조태일(1941~1999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나 1964년 경향신문 아침선박이란 시로 등단) 시 문학관에서 출발 토닥토닥 걷는 길을 따라 걷는다. 주차장에서 숲으로 들어서면 계곡으로 들어선다. 바닥을 질퍽하며 돌에는 이끼가 잔득끼여 있으며 일엽초 등 양치류가 잘 자라고 있다. 낙엽 썩어 다져지고 산죽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기작은 단풍나무부터 물푸레나무 키큰 서어나무, 비목, 노각나무까지 다양하다. 계곡에는 바위 사이로 작고 큰 낙차로 인해 하얀 포말과 함께 빠르게 흐른다. 물소가 들리는 듯 멀어졌다 다가서고 징검다리를 건너고 반야교를 지난다. 반야교 위에는 12지 신상의 돌조각을 올려놓았다.
데크길을 따라 걷다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해탈교를 지나나니 오래전 친구 내외와 야영했던 곳이 나왔다. 꼬맹이들과 같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세웠다. 좁은 계곡에 물자구를 치며 지금 보니 좁디좁다. 데크길은 계단으로 올라섰다 길게이어진다. 물살이 거세지며 소리 또한 우렁차다. 능파각위에서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진다. 깍아지는 절벽과 계곡이 아름다워 능파(凌波)각이란 누각을 세웠을 게다.
능파각에서 태안사 숲길은 끝이다. 능파각은 누의 기능을 하는 다리다. 계곡이라 할 것도 없는 지만 좁은 거리지만 물이 흐름을 끊지 않고 일주문까지 연결된다. 이 길은 아름드리 전나무가 몇 구루 서있다. 지금은 삼나무와 편백이 들어차 어지럽지만 곧게 뻗은 전나무가 아름답다.
태안사는 볼 것도 없는 절이다. 아무 몇 차례의 소실로 옛모습이 사라졌기도 하지만 그 흔한 탑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주문과 승탑비가 기억에 남는다. 외기둥에 다포가 올려진 단순하지만 다듬지 않은 기둥에 혀를 날름거리는 용머리가 항상 반긴다. 앞에 동리산(桐裏山)태안사와 뒤편 봉황문 편액이 걸려있다. 산은 봉두산 인데 동리산은 어데서 왔는지 궁금하다. 일주문은 숙종9년(1683년) 건립되었다고 한다.
광자대사 승탑과 비(보물) - 고려 광종 원년(950) 태안사를 중창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태안사 신라 경덕왕 원년(724) 대안사(大安寺)에서 조선초 泰安寺로 바뀌었단다.
광자대사 승탑과 비는 조각이 월등하다. 기단 당초문으로 시작하여 연잎을 겹쳐 포개며 연잎 안에 연판문이 조각되어있다. 탑신에는 사천왕상과 향로 등을 조각하였으며, 옥개석은 기와와 석가래 부연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상륜부는 보륜 보주 등을 올려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비례감이 뛰어나다. 비는 비문은 없지만 귀부와 이부가 화려한 조각으로 남아있다. 귀부는 살아 움직일 뜻하다. 상륜부는 용 네 마리가 엉켜있으며 중앙에 봉황과 위로 여의주을 새겼다.
경내로 올라서니 늦은 시각인지 조용하다. 대웅전과 마주한 보제루 위에는 김종권 작가가 이 지역 풍경을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마지막으로 대웅전에 들어서니 도인처럼 머리를 올리고 수염을 가지런히 내린 풍체를 한 이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있다. 방해할 수 없어 먼발치에서 되돌아 태안사를 내려왔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오후 6시가 다되었지만 아직 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