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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뫼길

제주 올레길

by 허허도사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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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고속 페리어를 타고 다시 제주로 향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여수에서 가볍게 생맥주를 마시고 00시20분 배는 출발했다. 바다는 몹시 거칠었다. 배는 거친 파도에 30분 연착하였다. 그래도 비가 온다는 하늘은 구름이 걷히고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선상 일출을 보았다. 일기예보를 깬 월하정인이다. 월하정인이 지나가면 비도 멈추었다.


제주에 도착하면 이국적인 정취를 느낀다. 푸른 파도와 바람이다. 그리고 내륙에서 볼 수 없는 야자수 나무가 그렇다. 2024년 첫 여행지는 올레길이다. 한 달 살기 올레길을 일주하고 싶지만 아직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기다려야 한다. 당연히 패키지여행이다. 1코스도 아니고 8코스라니 상품을 계획한 자도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8코스는 대평포구에서 월평아왜낭목쉼터까지 19.6km를 걷는다. 오랜만에 장거리를 걷는다는 마음에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전날 파도가 심해 배가 요동치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다. 그렇게 술을 마셨는데도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에 비 예보가 있다.
아침에 선지해장국을 먹고 차량으로 이동하여 대평포구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올레길을 걷는다. 파도 소리는 여전히 거칠었다. 유채꽃이 노랗게 물들어 여심을 유혹하고 있다. 50대 중년의 여성 4명은 첫 여행처럼 깔깔거리며 노란 유채꽃과 푸른 바다와 함께 사진을 담고 있다. 그리고 40대 후반 브로맨스를 뽐내며 번갈아 가면 다정하게 사진을 찍어 성 정체성을 의심하였다.
하예포구 진황등대를 이어 논짓물에서 해안을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간다. 대왕수천 여래생태공원을 지나간다. 수변생태공원으로 개울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산괴불주머니 와 자주괴불주머니가 꽃대를 올리고 있을 뿐이다. 노랫소리가 들린다. 일명 뽕짝이 노래방 가수처럼 거칠게 생방송하고 있다. 지역축제인 벚꽃축제를 준비 중이란다. 하지만 대상인 벚꽃은 피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몰려들고 있었다. 행사가 오후 2시부터라고 한다. 오전 11시도 아니고 오후 2시라 이곳도 아이러니하였다. 파전에 막걸리 한잔 걸치고자 했으나 준비도 안 되어 지나쳐야 했다. 생태공원을 벗어나 도로를 타고 중문단지로 향했다. 여미지 식물원에서 길은 멈춰야 했다. 목이 말라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셨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일행이 있었다.



우리가 기대한 만큼 여행은 이어가지 못했다. 덥다는 이유로 길을 끝내자는 것이다. 그날 20도까지 오르긴 하였지만 모두 그렇게 몰아갔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몇 명의 동의하에 올레길은 멈추고 다른 곳을 관광하기로 합의하였단다. 패키지여행의 단점이다. 각자 나이도 취향도 다른 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본래의 목적은 변형되기 마련이다. 앞만 보고 가는 이들과 이것저것 시간을 무시한 채 맛보며 즐기는 이들과의 시각과 시간 차이는 컸다. 그래서 한 시간이라는 터울에 기다리는 자는 더 길게 느껴지고 늦게 도착한 자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목적대로 여행하길 바란다.
일행은 총 18명이다. 초등학생 남매가 있는 가족과 부부 4팀
이성과 동성 친구 2팀 중년의 여성 4명
올레길을 완주하지 못하고 아쉬움이 남은 채 차량으로 이동하여 새섬을 둘러보았다. 이곳도 올레길에 접해있다. 다시 차량으로 이동하여 사려니숲길을 걸었다. 삼나무가 빽빽이 자란 숲은 어두웠다. 비가 내려 축축하고 이끼가 초록 융단처럼 살아있다. 다들 앞만 보며 전투적으로 걷는다. 월하정인조차 멀어지고 있다. 나는 길섶 복수가 눈에 띄어 숲으로 들어섰다. 세복수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내려올 때 복수로라 하여도 관심 밖이다.


저녁으로 흑돼지구이를 먹었다. 새로운 식구들과 술잔을 나다 보니 만취 직전까지 오랜 시간을 나눴다. 술을 즐기는 자와 마시지 않는 자의 기다림이 있을 뿐이었다. 식당은 돌담집을 개조한 조그만 마을 입구에 자리한 노포다. 지역 맛집이다. 통삼겹이 구워지고 묵은지와 갓김치를 볶았다. 그리고 두툼한 고사까지 삼합이 되었다. 그 덕에 술에 취해 쓰러진 자도 있었다.
일정은 변경되어 활동을 즐기는 자들에게 틀에 갇혀 이동하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며 언니 동생이 되어간다. 밥과 술을 같이 하니 식구가 되었다. 거친 파도만큼 인생의 굴곡은 없어도 모두 만족한 삶을 살고 있으니 이렇게 또 다른 여행지에서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들딸과 함께 대화가 없는 가족. 중년의 여인 친구 네 명이 함께한 첫 여행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길어진다. 여행을 즐기는 부부 인근 광양에서 왔단다. 40대 참 브로맨스와 여친과의 여행 중인 남친은 전북대 선 후배라고 술잔을 연거푸 들이키다 인사불성이 되었다. 골프를 좋아하는 친구와 돌싱으로 사는 친구의 조합도 직장 동료가 여친으로 서로 보듬고 한 여행 또 다른 인연이며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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