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동 C-128번지는 1988년까지 살았다. 지금은 인제동 49-**으로 변경되었다. C자는 1960년대 수혜복원지구를 그렇게 불렀다.
영성상회 이곳에 터를 잡은 지는 내 기억의 시작부터 있었다. 성남초등학교를 다니는 나는 매일 하천다리를 건너 등교했다. 그 하천은 여름이면 물고기잡고 겨울이면 썰매를 탔던 곳이다. 한해는 비가 많이 내렸다. 다음날 아침 제방이 터져 양동이로 붕어를 가득 담았던 기억이 난다. 모래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깨끗한 하천으로 가재도 많았었다. 지금은 복개되어 하인제길로 자동차가 다닌다.
어린시절 집 앞 도로는 자동차가 귀한시절 비포장으로 아주 넓게 느껴졌다. 지금은 길가에 주차를 하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였다. 비포장이라 바닥에 구멍을 파고 구슬치기를 하고, 딱지를 접어 치기도 하였다. 그해 겨울 딱지가 마대로 가득 담겨있었다. 여름 저녁 무렵 방역차가 흰 연기를 뿜어대면 미친 듯 따라 다니고 저녁이 되면 평상에서 흑백 TV를 보았다. 뻥튀기 기계가 돌아다니면 구수한 냄새에 강냉이 한 알이라도 먹어보고자 기웃거렸다. 주변에 대나무를 잘라 물총을 만들고 쪼개어 딱총을 만들어 아래동내와 패싸움을 하기도 하였다. 봄이면 빼비(띠풀의 꽃대)를 뽑아 먹으러 기차길옆을 따라 한없이 걸었으며 여름에는 개울가에 물고기를 더듬었으며(그땐 하천이 복개되지 않아 거미줄처럼 엮어있었다.) 개구리 뒷다리와 메뚜기를 구워먹었다. 개구리는 호박꽃을 미끼로 낚시로 잡았다. 겨울이면 들녘에 불을 피우며 불깡통(쥐불놀이)을 돌렸다. 무시를 뽑아먹고 빼깽이(보해주정공장이 있어 길가에는 고구마를 삐져 말렸다.)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볏집단 근처에 불놀이를 하다. 집단을 통째로 태워 놀래 도망치기도 하였다. 기막힌 일은 불놀이를 하고 있는데 옆에 아저씨 몇 명이서 쥐를 구워먹고 있었다.
그시절 양철 장남감이 유행이였다. 촛불에 달궈 물을 순환시켜 움직이는 양철배가 있었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 한참 놀이하다. 그만 촛불을 끄려고 들어 올리는 순간 아랫방 신혼부부가 햇볓에 널어놓은 담요를 홀라당 태워 무서워 집을 뛰쳐나왔다. 혼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어 직장 선후배로 다시 만났으니 그 기역이 새롭다.
영성상회는 동네에 유일한 슈퍼는 아니지만 잘 살지 못하는 동네 사랑방이였다. 문방구와 과자를 팔았으며 철에 따라 과일이며 붕어빵과 오뎅도 팔았다. 과일이라곤 덜익은 복숭아를 당원(사카린)을 푼물에 담갔다 팔기도 하였다. 그 옆 한켠에는 막걸리도 팔았다. 잠자는 방에는 매일 화투판이 벌어지졌다. 어머니는 장사에 관심이 없는 듯하였다. 막걸리를 마시며 화투치는 것이 낙이였다. 저녁이면 술에 취한 사람들로 동네가 시끄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 때마다 아버지가 한 목하여 난장판이 되었다.
불현 듯 그 시절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