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림205

천년을 살 것인가 백 년을 살 것인가 한해살이도 반갑단다. 벼락을 맞아 죽든 바람에 쓰러지든 그저 한세상 그래도 좋단다. 딱따구리가 쪼아대고 버섯이 자리를 잡아도 그저 같이 살아갈 뿐이란다.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치열한 경쟁도 마다하지 않고 버티며 살았단다. 나도 한세상 살다 보니 죽어도 기쁘다. 누군가 내 자리에 누릴 행복을 똑같이 나눠 갖지 않겠는가. 빈 몸으로 태어나 이 정도 누렸으면 행복하겠다. 비록 남아있는 자가 잠시나마 애도를 표해준다면 아니 그냥 잊어도 그만이다. 시한부 인생 조금 늦게 간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를 대신해 누릴 자가 기다리니 행복하다. 2023. 4. 11.
인제동 C지구 50년 전 뛰어놀던 골목은 좁았다. 큰 건물들이 들어선 도시에서 오래된 집들은 작고 초라해 보인다. 그곳에서 숨바꼭질 말뚝박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땅따먹기 돌치기(비석치기) 연날리기 불깡통돌리기(쥐불놀이) 딱총과 물총놀이 계절마다 바뀌었던 놀이 들이다. 어둑해질 때까지 놀다 집으로 돌아가던 그 시절 방역 차를 따라 달리던 그 시절 반딧불이 돌아다니며 평상에서 흑백 TV를 함께 보았던 시절 시궁창이 흐르던 그 시절 높게 보았던 지붕은 오늘따라 낮게 드리웠다. 블록으로 쌓아 올린 집들 시멘트 기와를 올린 박공지붕은 강판으로 바뀌었지만 한두 채는 여전히 남아있다. 좁은 마당은 밖이 보일세라 담장으로 둘러쳤다. 창마다 방범 창살이 설치되었다. 유학생이 많았던 시절 좀도둑이 극성을 부렸다. 구멍가게를 하였.. 2023. 4. 7.
도시 민들레 구석진 곳에 뿌리를 내렸으니 답답하겠다. 도심 속 보이는 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비좁은 틈에 자리를 잡아 흙을 부여잡고 물을 찾아 더부살이한다. 온갖 쓰레기가 밀려와도 꽃은 피웠다. 사람 발에 밟히는 잡초가 되어 언제 뽑힐지 모르는 인생 화려한 꽃으로 화답한다. 너도 좁은 세상 나도 좁은 세상 꿈도 같겠다. 뽑히지 않고 잘 버티자. 2023. 4. 6.
재개발 또 하나의 마을이 사라진다. 비록 낡고 초라한 집이지만 추억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오백 살 당산나무 아래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아름다운 마을은 신도심에 밀려 빈집으로 변하고 애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마을로 쇠퇴하여 결국 종말에 이르렀다. 철거를 알리는 황색 경고판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주인을 잃은 빈 보행차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곳을 지키는 것은 고양이 한 마리 석양에 졸고 있다. 잠시 머리를 들더니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묻는다. 각자 취향에 맞춰 지어진 집들은 허물어지고 콘크리트 기둥이 하늘을 가리고 닭장처럼 네모진 공간 안에 이야기 소리는 갇힌 채 TV 화면만 깜박거린다. 나도 그 공간에서 살고 있구나. 202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