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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03

나무 우리 밭은 개울가에 접해있다. 팽나무 한 그루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느티나무는 개울 가운데 자라고 있어 우리 밭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그렇다. 그 나무는 2년 전 마을에서 30만 원을 받고 토목업자에게 팔렸다. 100년 정도 되는 나무가 30만 원이라니 서글프다. 개울 건너 언덕에는 500년 묵은 당산나무가 있다. 그 또한 느티나무다. 오래전 태풍에 몸통 한쪽을 잃었다. 누군가는 가끔 찾아와 그 아래 제단을 만들고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 보름이면 당제를 올리고 금줄을 쳤다. 지금은 당제를 올릴 젊은이들이 없어 그만 멈췄다. 그리고 속이 비어 벌도 드나들고 있다. 수술받은 흔적이 있고 한쪽 팔은 깁스도 하고 있다. 그 주변 새끼 나무들이 자라고 조그만 숲이 되었다. 그 사이 이팝.. 2024. 3. 21.
미진이용원 이발소가 이용원으로 바뀐 지 언제일까? 이발소 하면 목욕탕이 떠오른다. 새벽 찬 공기 속을 가르며 뿌연 탕 속에서 몸을 불려 때를 밀고 다시 아침 찬 공기를 마시며 돌아올 때 이발소로 향한다. 첫 기억은 흰 가운을 입은 이발사가 판때기를 의자에 걸치고 올려 앉혔다. 흰 천을 목에 감았다. 너무 꽉 죄어 목이 아팠다. 고개를 젖히고 바리깡으로 밀었다 차가운 금속 피부에 닿자 몸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사각사각 금속가위 소리에 귀가 자극했다. 타일로 마무리된 수조에 머리를 숙이고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겼다. 양철 조리로 물을 뿌리며 빡빡 치대었다. 중학교 때 상고머리를 할 때 겨울 뒤 봄날이 찾아오는 계절 뒤통수가 시렸던 그날도, 위병소 앞 허름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빡빡 밀고 아버지의 배웅을 받고 입소하던 날,.. 2024. 3. 15.
수레 끄는 노인 이른 새벽녘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 위 폐지를 가득 싣고 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노인의 굽어진 어깨는 시내버스 차창 사이로 위태롭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접어진 골판지 상자들은 퍼즐처럼 올려지는 시간만큼 고물상 저울은 올라간다. 폐지의 무게만큼 쌓였으면 하는 한 끼의 노고에도 봄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한 끼의 고단함에도 질서 정연하게 쌓여있는 폐골판지를 보면 삶을 허투루 살 수가 없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찬비를 맞으며 오늘도 수레에 몸을 싣고 대로를 가로지른다. 첫차는 기사만이 텅 빈 차를 환한 빛으로 달린다. 나는 반대편을 가로지르며 이어폰을 끼고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있다. 2024. 3. 11.
남교오거리 시공간의 분할에서 오는 거리감은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이어진다. 거리의 시간은 생산의 년도 만큼 변화를 이어간다. 유행을 따라 간판의 모습도 직종도 달라진다. 네온사인 간판은 이제 사라지고 식어간다. 학생들의 수만큼 활발했던 스포츠 매장도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그러나 변함없이 이어가는 열쇠와 도장은 비밀의 금고처럼 그대로다. 겨울에도 꽃이 지지 않은 세상에 꽃집은 변함없이 이어간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빌딩 숲에 가려진 뒷골목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다. 2024.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