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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by 허허도사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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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오늘은 뭐 할까?

모처럼 주암 시골집을 벗어나 휴식을 취한다.

어제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술을 들이켰다. 아침에 눈을 뜨니 아직도 취기가 남아있다. 속도 거북스럽다. 잠을 더 청해보지만 허사다. 어제 저녁 친구에게 톡이 왔다. 산에 가자고 한다. 오전1130분에 만나 점심을 먹었다. 우동을 먹었지만 절반도 먹지를 못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해본다. 동쪽 아니면 서쪽 금오산과 백아산이다. 백아산은 기억이 가물거린단다. 구름다리를 건너보지 못한 것이 10년은 넘어 보였다. 나는 몇 해전 철뚝이 피기전 바람이 몹시 붑던날 고소공포증을 이겨내며 걸어보았다. 결국 가보지 않은 금오산을 선택하였다.

 

항상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금오산을 가본적이 있던가 기억이 없다. 월하정인은 아버지와 갔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처음이라 생각하고 하동으로 향했다. 친구는 출근길 구름모자를 쓰고 있는 금오산을 신비롭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나도 정상에 설치된 레이더가 천문대인 줄 알고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반복되는 출근길이 달갑지는 않는다고 한다. 일터로 향한 길은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일 것이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 가볍지라도 피동적인 삶은 무겁게 느껴진다.

 

금오산 등산로는 크게 덕천, 대송, 고룡, 청소년수련원으로 시작되는 길이다. 가장 대중적인 등산로를 찾다 길을 헤매고 금성사가 있는 대송리로 정했다. 주차장에는 차가 한대도 없었다. 늦은 시간이라 생각했지만 산행을 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날씨는 덥고 습했다. 등산로의 시작은 경운기가 지나갈 정도의 폭으로 넓은 길은 풀베기를 하였으며 지난 폭으로 바닥이 페이고 돌들이 들어나 어지럽다. 길위에 밤송이와 알밤이 떨어져 가을을 느끼게 한다. 숲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간간히 섞여 온갖 버섯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귀하다는 댕구알버섯도 자라고 있다. 습한 기운에 바닥이 미끄러워 위태하였다. 임도길은 오두막을 지나서 끝이났으며 계단길의 시작이되었다.

정상까지 2.4km의 길은 짧은 만큼 고행의 길이였다. 초입부터 땅바닥에 가까운 기울기에 속은 답답해 오며 땀은 식을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이렇게 힘든 산행은 처음이다. 어제 먹은 숙취가 더 했겠지만 자꾸만 주저 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배낭속의 카메라를 냅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몇키로그램의 그 무게가 내 다리 위를 짓누르고 있는 듯 한발한발 내딛기가 힘들어진다. 산세는 더욱 심하게 변하고 위를 쳐다봐도 친구는 멀어져 보이지 않는다. 정상을 밟기도 전에 다리가 풀리겠다. 그렇게 몇 번의 쉼으로 능선에 접어드니 고작 1.7km 올라왔단다. 청소년수련원까지 2.7km 왜 이 코스에 등산객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다시는 이곳으로 오르지 않으리 생각한다. 정상까지는 1km 남았단다.

 

능선으 타고 오르니 조금 살 것 같다. 가파른 등산로는 오솔길로 바뀌고 바위들이 하나둘 크게 변해간다. 참취며 며느리밥풀 그리고 닭의장풀이 피었다. 때늦은 비비추와 이제 꽃대를 올린 산부추가 보인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오르니 너럭바위가 나온다. 뒤를 돌아보니 섬들이 둥둥 떠 있는 다도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래로 하동 화력발전소와 그 넘어 광양항이 그리고 여수 산단까지 들어온다. 날씨가 맑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였다. 너럭바위에는 두 갈래로 자란 반송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아래 자리를 잡고 풍경과 마주하고 한참을 쉬었다.

이제 정상이다. 위로는 군사시설과 좌측으로 중계탑이 보인다. 그 안쪽으로 너덜지대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옆 짚라인이 지나가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정상은 공사중이다. 짚라인과 스카이워크 그리고 케이블카 까지 공사가 진행중이다.

군사시설에 막힌 정상을 멀리하고 내려간다. 넉럭바위 옆 마애불을 살펴본다. 풍화되어 형태를 찾기가 쉽지 않다. 내려가는 길 새로 길을 찾아 덕천으로 향했다. 악몽의 시작이다. 덕천마을로 향하면 대송까지 돌아오는 길이 막막하다. 그래서 중간에 갈림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정표는 없었다. 그래서 등산앱지도를 보며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야 했다. 바위 더미 사이를 헤집고 내려오니 길은 묵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흔한 꼬리표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에 걸리는 나뭇가지를 해치고 한참을 내려와도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국가지정이정표가 길이였음을 알려주었다. 하마터면 너덜지대를 지나 등산로를 이탈할뻔했다. 그러는 동안 미끄러져 넘어지기를 반복하게 되는 고행의 길이 되었다. 이정표가 없으니 어느 만큼 내려왔는지는 오로지 GPS로 검색된 지도에 의지해야 했다. 빛도 없는 원시림에 경사는 50도가 훨씬 넘는 길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다 결국 5미터를 굴러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다행히 찰과상만 있었지만 육중한 몸이 구르니 속수무책이다. 그나마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 마을과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희미한 등산로가 보이기 시작하며 막다른 길을 벗어나니 비로소 오두막이 나오는 올라왔던 길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패전병처럼 터벅터벅 내려왔다. 내려와 등산앱을 보니 5.69km란다. 체감상 10km를 넘게 걷는 느낌은 귀신에 홀린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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