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는 병원을 오가며 마음이 답답하였다. 다행히 모두의 걱정은 조금씩 해결되어 순천으로 내려왔다. 늦은 시간 가까운 화엄사를 찾았다. 3일 내내 눈 덮인 화순과는 달리 순천은 눈이 없었다. 그리고 구례는 녹고 있었다. 응달진 동쪽 기와에만 잔설이 남아있다.
금강문을 지나고 만세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월하정인 툇마루에 멈췄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움직이기 싫은 사람처럼 툇마루에 앉아 멍 때렸다. 나보고 둘러보고 오란다. 나는 각황전을 지나 사사자삼층석탑에 올랐다. 몇해전 해체 복원과정에서 부처님 진신사리가 발견되어 적멸보궁으로 변한 곳이다.
그 주변 소나무가 도열을 하고 있다. 붉은 수피가 매끄러운 소나무가 유독 눈에 뛰었다. 회색빛 세상에서 석탑은 도드라지지 않고 묵묵했다. 누군가 탑돌이를 하고 있다. 나도 돌았다. 소원을 빌어야만 하는 세상은 아니지만 그 기운이라도 받고자 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월하정인이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왔다. 말이 없었다. 그 또한 탑을 돌았다.
견성전을 돌아 삼성각으로 향했다. 어디든 높이 올라야 했다. 그곳에서 가지 말라고 나뭇가지로 길을 막은 그곳을 오르자 사사자삼층석탑과 각황전과 경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실 육중한 소나무를 보고자 올라왔다.
삼성각으로 내려올 때 스님이 올라가면 안 됩니다. 한다. 조용히 내려와 삼성각 돌계단에 앉아 능선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는 구례 읍내가 훤하게 비춰왔다.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늦은 오후 산사는 조용했다. 스님은 신발을 벗는 곳에 앉지말고 마루에 앉으라고 한다. 더러운 곳에 앉으면 안 좋은 기운이 있다며. 스님과의 짧은 대화를 이어가고 우리는 조용히 내려왔다.
각황전 옆 화엄매는 그대로 있었다. 붉게 물들려면 아직 두 달은 더 추위를 더해야 할것이다.
산사
구례 화엄사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