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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by 허허도사 2025.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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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은 항상 찾고 싶은 산이다. 지리산 산행이 등록되어 바로 신청하였다. 고산지대의 능선을 따라 걷는 기분은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이다. 발아래 산그늘의 겹겹이 쌓이며 멀어지는 그림자를 뒤로하며 초록의 융단 위를 걷는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많다. 증산리가 가장 빠르고 백무동에서도 오른다. 오늘은 거림에서 출발하였다.

거림 – 세석평전 – 촛대봉 – 연하봉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법계사 – 증산리 16km이상 7시간 30분 산행을 하였다.

거림에서 세석평전 산행은 처음이었다. 하기야 천왕봉을 오른지 25년 전이다. 기억도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산장을 지나 거림탐방지원세터를 오전9시 13분에 통과하였다. 때죽나무가 꽃을 떨구고 있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숲은 어두웠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완만하였지만 그래도 계단이 괴롭혔다. 세석대피소까지는 6km나 되는 긴 거리다. 천왕봉을 오르려는 선두 그룹은 10명 정도였다. 그들을 따라 가기에는 버거웠다.

지난 화마의 흔적이 남겨있는 지대를 지난다. 그날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면 세석까지 오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석 2km를 남기고 고산지대로 변했다. 갑자기 끊겼던 물소리가 들리더니 구상나무와 박달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1400m의 고지에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숲 그늘 아래 처녀치마와 박세 등 다양한 야생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 끝은 샘으로 이어지고 노란 동의나물 꽃이 미나리냉이 꽃과 더불어 피었다. 바로 위 세석대피소가 나왔다.

야영이 허용하던 시절 이곳은 허어벌판이었다. 그 위로 텐트가 형형색색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지금의 세석은 초록으로 변했다. 그 시간이 30년이 지났다.

하늘과 맞닿은 능선과 마주했다. 어두웠던 숲에서 벗어나 파란하늘을 보니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한 듯하다. 오랜만의 장거리 산행으로 능선에 오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촛대봉으로 향했다. 검은 바위들이 솟아있는 촛대봉 사이로 구상나무가 뾰족하게 올라온 제석봉과 천왕봉이 기다리고 있다. 6월의 야생화를 찾았지만 풀솜대는 열매를 맺고 쥐오줌풀이 꽃을 피웠지만 지리털이풀과 노루오줌 이제 막 꽃대를 올리고 있다.

연하선경 연하봉이다. 연무가 가득한 연하봉은 몽롱한 꿈속을 헤매는 기분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맑아 그 기분은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중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연하봉을 내려가니 장터목 대피소가 나왔다. 천왕봉이 다가왔다. 오는 동안 왼쪽 발목을 두 번이나 삐었다. 오르는 것은 무리가 없으나 내리막에서 무리가 온다. 제석봉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월하정인도 벅찬 듯이 등산스틱을 잡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는다. 물도 벌써 3병째다 땀은 온몸을 적시고 흰 소금기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제석봉의 나무들은 벌목되어 그 나무들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백골이 되어 서있거나 누워있다. 지리산하면 고사목의 사진이 한동안 그림처럼 배경화면으로 걸려있었다. 지금은 어린 나무들이 제법 자라 그 흔적을 지워가고 있다. 제석봉을 뒤로하니 천왕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이제 멀지 않았다.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천왕봉은 쉽지 않았다.

지금껏 천왕봉은 일출을 보러 새벽에 출발하였으나 한낮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인지 예전의 신비감이 사라진 듯 거대한 산봉우리처럼 다가온다. 높게 솟은 봉우리는 이제 산행을 시작한 듯 높아보였다. 통천문을 지나고서야 신의 영역에 들어온 듯 신령의 기운이 느껴진다. 오후2시 15분 천왕봉 표지석과 마주하였다. 지리산 정상 천왕봉(1915m) 남한의 최고봉이다. 정상에는 많지 않은 등산객 덕에 기다림 없이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이 문구를 다시 보니 벅찬 감동이다.

이제 증산리까지 5.4km를 수직 하강하여야 한다. 지난주 금오산의 계단 지옥의 배는 더 길다. 발목 상태가 안 좋아 자구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벌써 5시간째 산행이다. 개선문을 통과하여 신선의 세계에서 벗어나 법계사를 지나 증산리 까지는 한참 멀었다. 통천길을 빠져나와 다시 계곡을 타고 내려는 길은 지루하고 발목에 힘이 빠지는 시간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피로가 풀렸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5시다.

시원한 맥주가 필요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숨에 들이키며 일행들을 기다렸다. 당분간 천왕봉은 꿈꾸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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