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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쌍계사 가는 길

by 허허도사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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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청학루를 지나 금당을 마주하고 툇마루에 앉아 뒤뜰을 바라보았다. 동백숲에 백매가 피고 있다. 벌들이 몰려들고 새들도 날아든다. 누군가 탑돌이를 하나 마룻바닥이 삐그덕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일정하다. 한 바퀴도 아니고 몇 바퀴 채 돌고 있는지 소리는 이어졌다. 소원성취하길. 금당에는 불상이 아닌 석탑이 들어있다.

국사암으로 향했다. 1,200년을 이어 살고 있는 느티나무를 보아야 했다. 네 마리의 용이 승천하듯 자라고 있었다. 가지 일부가 부러져 있지만 사방으로 뻗치고 있다. 요즘 들어 나무에 눈이 돌아간다. 기본이 500년을 버티고 살아온 생명력에 그저 100년도 못 미치는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쪽은 바람에 갈라지고 썩어 들어도 다른 한쪽은 새순을 튀어 태양을 향해 뻗어 오르는 것을 보면 희노애락을 보는 것이다.

느티나무의 세월만큼 국사암은 건강하지 못했다. 축대가 무너져 보수 중이다. 국사암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계절이 멈춘 듯 숲은 건조하다.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던 농부는 나그네에게 눈치도 주지 않고 일을 한다. 쌍계연지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 발길을 옮겼다. 두꺼비였다. 암컷을 차지하려고 수십 마리의 수컷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한 쌍이 여유를 부리는가 하면 혼자 사색을 즐기는 놈도 있다. 물 위에는 검은 알들이 뭉텅이로 깔려있다. 길에는 로드킬로 생을 다한 두꺼비가 그리고 옆 또 다른 두꺼비가 보여 길섶으로 밀어보았다. 꼼짝도 안 한다. 남의 생에 간섭하는 것 같아 지나치고 내려왔다. 차들이 서행하길 바라지만 조금 전 고로쇠를 채취하던 차량이 순식간에 내려간다. 길가 바위에 새겨진 글이 뭐냐고 묻는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었다.

한참을 내려왔건만 길은 쌍계사와 멀어지고 있다. 생각했던 길이 아니었다. 길은 쌍계사가 아닌 목압마을로 내려왔다. 굽어진 계곡 사이로 집들이 몰려있다. 내려왔던 만큼 다시 올라야 했다. 월하정인 쌍계사로 다시 내려갈 것을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며 볼멘소리한다.

우리의 삶에 정해진 길은 없다. 그리고 길은 연결된다. 다만 거리가 길고 짧음이고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조금 멀리 돌아가면 그만큼 새로운 곳을 볼 수 있다. 같은 길만 다닌다면 다른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안도하며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기 주저하지 않는다. 바람도 없는 따뜻한 봄날이라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겠다. 찬바람에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는 날에는 월하정인에게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마을과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는 생태적 삶을 느끼며 또 다른 문화를 접한다. 이곳에서 터를 잡고 그들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모습이 그려진다. 옛집과 개량된 집들이 공존을 하며 살고 있다.

차밭으로 연결되는 길은 잎을 떨군 나무들 사이로 푸른 차밭이 산 능선까지 이어진다. 구불거리는 길 오르막길로 길옆 천년다향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역광에 차밭이 흐릿하게 번진다.

깊은 산골 마을에도 초등학교가 살아있다. 쌍계초등학교를 돌아 석문마을로 연결되었다. 화계천이 흐르는 길을 따라 내려가 섬진강과 만났다. 3월이면 꽃비가 내리는 이곳을 다시 찾아야 한다.

화개장터에서 벚굴을 먹고 빙어튀김도 먹고 막걸리도 마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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