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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가는 이유

by 허허도사 2019.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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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 산이 있으니까 라는 일상적인 댓글이 아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도시락을 까먹기 위해서, 사진을 찍기 위해, 묻지 마 관광도 있겠다.

나는 사계절을 느끼고 싶어서 산에 간다.

 

산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국민)학교 시설 봄에는 빼비(띠풀의 꽃대로 속살을 씹어 껌처럼 먹었다)를 따 먹으로 가을에는 메뚜기나 곤충들을 잡으러 들로 산으로 헤매 다녔다. 순천에는 봉화산과 남산이 있어 어린 시절 걸음으로 반나절은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남산에 올랐을 때 처음 바다를 보았다. 지금은 순천만이라 불리는 섬들이 보이는 바다 그저 신기했다. 그 시절 아주 멀게만 느껴지던 바다는 한 시간도 안 걸린다.

 

그리고 대학시절 꽃 사진을 찍는다고, 운해를 보고 싶어 부지런히 찾았다.

지리산 첫 종주 때다 군에서 휴가 나와 지리산 종주를 형과 같이 했다. 4번의 종주를 하였는데 그때마다 장마철이었다.. 구례에서 노고단행 첫차로 성삼재에 올랐다. 산 아래는 장마로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손대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두터운 구름이었다.. 시암재를 지나자 구름 속으로 들어섰다. 몽환적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환하게 빛이 들어왔다. (비행기가 구름 사이를 지나는 느낌) 성삼재에 오르는 순간 하늘은 감쪽같이 변했다. 맑고 푸른 하늘이다. 그렇게 파란 하늘은 그때 처음 느꼈다. 그리고 발아래는 구름이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구름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졌다. 멀리 반야봉이 섬처럼 솟아있음 뿐이다. 뛰어내려도 안 아플 것 같았다. 그렇게 운해와 첫 만남이었다..

 

지리산 종주를 하니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텐트와 담요, 쌀과 김치 등 먹거리(소주는 필수) 삼겹살도 구워 먹었다. 20kg 이상되는 배낭을 메고 천왕봉을 향해 반대로 노고단으로 2박3일 산행을 하였다. 성삼재, 피아골, 백무동, 증산리에서 출발하는 종주는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였다. 그때마다 장마철이었다.. 물에 젖은 텐트 지금이라면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야영지는 임걸령, 연하천, 벽소령, 세석, 선비샘, 장터목이 있었으나 주로 벽소령과 세석, 장터목이 터가 넓고 좋았다. 임걸령은 주로 점심을 연하천은 물이 잠겨 습하였으며 선비샘은 공간이 협소하였다.

비가 오며 구름이 지나가고 운무에 휩싸여 텐트와 배낭은 항상 젓은 상태였다.

장마철 비를 맞아가며 산행을 하니 잡자기 저체온 증으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결국 세석평전에서 텐트를 치고 기름 버너로 몸을 녹였던 기역이 있다. 그 시절 긴팔 셔츠 하나만 걸치고 비를 맞았으니 당연한 결과겠다.

늦은 시각 장터목에 도착하니 야영지는 셈터와 멀리 떨어진 외곽지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 사이로 경사가 없는 곳으로 텐트를 치니 멀리 번갯불이 뻔쩍거린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밤새 천둥소리와 잠을 잤다. 라디오에서는 호우경보가 발령되어 주의를 요했다. 다음날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아직 새벽녘이다. 어젯밤 요란했던 하늘은 멀쩡하게 변하였다, 새벽별이 눈앞으로 떨어지는 맑은 날이다. 제석봉으로 불빛 행렬이 보인다. 천왕봉일출을 보려는 이들이 어둡고 좁은 길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제석봉을 넘어가고 있던 것이다. 계획에도 없는 우리는 손전등도 없이 뒤를 따랐다. 앞 선이의 불빛에 의지해 거친 길을 걸어 천왕봉에 도착하였다. 좁은 정상에는 많은 이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삼각대를 세워 일직 감치 자리를 잡은 열정의 사진사도 있었다. 날이 밝아오자 산을 휘감는 운해는 산골마을을 위로 넘실대고 있다. 이운해가 잠잠해야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 있다. 다행히 운해는 바다처럼 잠잠해졌다.. 동해바다가 아닌 구름바다는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더니 해가 솟아올랐다. 관동 팔경의 일출 장면과 같은 모습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일출을 보았다. 지리산 10경중 하나란다. 이렇듯 여름산행을 몇 년에 걸쳤다. 야영장이 대피소로 바뀌기 전까지 종주를 하였다.

 

가을산행 피아골이다. 빨치산의 피가 흐르는 피아골은 빨갛다고 해야 하나 계곡 물에 물든 단풍도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단풍이다. 제대로 된 단풍 또한 보기 힘들다. 가뭄이 들 때면 물도 들지 않고 떨어진다. 색도 칙칙하다. 갑자기 서리라도 내리면 잎이 타들어 버린다. 매번 사진을 찍었지만 마음에 들었던 적은 없었다. 피아골대피소에서 컵라면을 먹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사람들 등살에 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겨울산행 노고단 눈꽃 지금은 온난화 탓에 오후면 사라진다. 상고대를 본적이 몇 년인지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사월에도 눈이 내렸다. 사월이면 산수유 매화꽃이 피고 지는 시기다. 봄비가 내리는 날 성삼재는 길이 녹아 차로 오를 수 있다. 간혹 봄비가 내리면 노고단과 백운산에는 구름모자를 쓴 듯 하얗게 눈꽃이 피었다. 꽃샘추위에 반나절은 그대로 있었다. 비가 오기를 기다려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오른다. 해발 1,000m 이상 볼 수 있는 상고대가 피었다. 가지에 솜사탕처럼 길게 붙어있는 눈꽃은 통신소 부근 바위에 피어난 상고대를 잊지 못한다. 아직도 슬라이드 필름으로 잘 보관되어 있다. 그 시절 노고단은 통제구간이었다.

 

산은 그랬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운해를 보고 싶고 가을이면 단풍 그리고 겨울이면 눈꽃이 그리웠다. 올해 눈꽃을 보러 무등산과 백운산을 다녔지만 제대로 된 눈꽃은 보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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