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눈꽃
2020. 1. 12.
2020. 1. 12.
무등산
겨울산행 하면 눈꽃(상고대)이 아른거린다. 구름이 지나가 바위표면부터 나뭇가지에 바람방향으로 길게 뻗은 눈꽃 1,000고지 이상에서 핀다는 상고대를 봐야한다. 작년에는 제대로 된 눈꽃을 보지 못했다. 올 해도 마찬가지로 봄날 같은 날씨로 첫눈도 아직 구경도 못했다.
가까운 곳에서 상고대를 볼 수 있는 곳은 지리산, 백운산, 무등산 정도이다. 그래서 무등산으로 향했다.
월하정인 올 들어 첫 산행으로 규봉암까지 오른다고 가벼운 차림이다.
하늘은 구름이 잔득 낀 날씨로 기온만 조금 낮았으면 눈꽃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화순 이서면에 들어서 무등산을 보고 허옇고 하니 월하정인 뭐가 보이냐고 눈도 좋단다.
오늘은 도원마을에서 출발하였다. 혹시 몰라 아이젠까지 준비하여 산행을 시작하니 진눈깨비가 내린다. 상상수목원 길이나 이곳도 별반 차이 없이 규봉암까지(1.8km) 계단을 밟으며 올라간다. 매번 느끼지만 힘들다. 끝날 것 같은 계단은 지그재그로 계속 이어진다. 초입 삼나무 숲을 벗어나 소나무숲 까지 벗어나니 너덜지대가 나오니 무등산임을 알린다. 얼음이 얼었어야할 계곡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땅도 질퍽거리리다. 응달진 곳에 있어야할 눈도 보이지 않았다. 몇일전 내렸던 비가 이곳에서도 똑같이 내렸나 보다. 규봉암에서도 장불재에도 눈은 볼 수 없었다.
한시간 정도 올라 규봉암에 도착 광석대를 바라보고 지공너덜을 지나 석불암 마애불을 접견하고 맞은편 백마능선을 바라보며 장불재에 도착한다.
바람이 거세다. 1,000고지의 위엄이다. 두터운 장갑을 끼었어도 손끝이 찌릿하다. 위를 바라보니 서석대와 입석대가 나란히 보인다. 서석대쪽에 허옇게 눈꽃이 피였다. 대피소에서 간식을 챙기며 잠시 쉬어간다. 월하정인 서석대까지 가기 싫은 눈치다. 모른척 땀이 식기 전에 서둘러 올라갔다.
초목이 없는 고산지대 추위는 칼과 같다. 순간 얼어붙는다 하지만 예전같은 추위는 아니다. 입석대로 향하지 않고 반대편 목교를 지나 서석대로 오른다. 아이젠을 차기 애매하고 눈꽃은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가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절정을 느껴야지 절정을 느끼고 내려오면 흥이 쉽게 사라진다.
목교에서 서석대는 겨우내 눈이 녹지 않는 빙판길이다. 해가 비추지 않은 응달진 지역으로 아이젠은 필수다 가끔 준비하지 못하고 내려오는 경우 엉덩방아 한번쯤은 추고 내려온다. 오늘도 두 번이나 목격하였다. 빙판길을 다 내려와 아이젠을 벗는 등산객 아이젠 없이는 못가겠다고 한다.
돌계단은 약간 얼어있었지만 올라가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얕게 달라붙은 눈꽃은 서석대에 올라서니 두터워 진다. 병풍처럼 이어지는 시커먼 주상절리 사이 하얀 나뭇가지가 대비되어 수정같이 빛이난다. 바위까지 피웠으면 좋았겠지만 그 정도의 날씨가 최근 지속되지 않았다. 월하정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지만 담을 수 없는 한계에 포기한다. 바위 위로 유난히 보석처럼 하얗게 빛나는 가지를 담아보려 하지만 어렵다는 것을 알고 눈으로 담아간다고 한다. 전망대 아래는 겨울왕국이다. 제대로 피어난 눈꽃은 하얗고 하얗다. 그 넘어 장불재와 광주도심에는 구름 사이로 갈라지는 빛이 스며들고 있다.
전망대에서 나오자 한 학생이 다급하게 다가온다. 이내 넘어진다. 산행 경험이 없어 보이는 복장이다. 특이 데크길은 미끄러워 조심해야 하는데 약간의 경사진 곳에서 탈이 났다. 하지만 급하게 일어나 사진을 찍어 달랜다. 교수님 과제라며 나는 타고난 선택이라고 하였다.
서석대 위를 오르자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했다. 하얗게 핀 나뭇가지사이로 천황봉이 솟아있다. 초원지대로 오래 버틸 수 없다. 월하정인은 사진을 담다 말고 칼바람에 순간 주저앉고 말았다. 이곳은 항상 경이롭다. 초원지대위로 급하게 솟아오는 암봉은 가보지는 않았지만 알프스 어느 곳에 있음 듬직하다. 통제된 구역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사진으로 담아왔다. 눈꽃은 여기까지 였다. 서석대 아래로 융단처럼 펼쳐지던 눈꽃은 입석대 쪽으로 흔적없이 사라진다. 무표정한 갈색지대로 변해버렸다.
칼바람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입석대를 거쳐 장불재로 돌아와 도원마을까지 한걸음에 내려왔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녁이 되어 어둑하다.